유태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태오는 테디베어 코트를 입고 포토그래퍼 안성진의 스튜디오에 입장했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어보다 독일어를 훨씬 유창하게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언어실력은 유태오를 특별하게 만드는 수 많은 요소들 중 고작 하나일 뿐이다.

유태오의 아버지는 1970년대에 광부로 파견되어 온 가족이 함께 독일 이민을 갔다. 유태오는 쾰른에서 나고 자라 몇년 간 퀴니히스빈터에서 유년생활을 보낸 뒤 다시 쾰른으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의 부모님은 현재까지도 쾰른에서 거주 중이시다. 그는 학창시절 농구에 열정을 보여 체육대학에 입학하길 꿈꾸었고, 타 농구 선수들에 비해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리그에 진출하며 큰 활약을 선보였다. 그러나 더 늦기 전 잠시 숨을 돌리고 싶어서 였을까. 유태오는 갭이어로 일년동안 미국 뉴욕을 다녀온 뒤 운동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연기와 영화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과 뉴욕 필름 스쿨에 지원을 했어요. 당시 알 파치노,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니로를 굉장히 우러러봤어요. 그리고 공부를 시작한지 첫 주 만에 깨달은 것이 있는데, 바로 운동 선수로서 제가 느낀 감정이 무대 위로 옮겨졌을 때 기술은 달라도 심리적인 그 본질은 운동과 연기가 같다는 거예요.

이민가정에서 자란 교포 2세로서의 삶은 어땠나요?

저는 늘 남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 교포들 사이에서도 늘 약간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어요. 물론 좋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다른 한국 친구들이 여름방학때 한국으로 놀러갈때 저는 한국에 있는 농구 캠프를 갔었거든요. 한국의 농구 캠프 문화는 한국으로 놀러가는 것과는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어서,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한국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놀러갈때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면 농구 캠프 안은 꽤나 거칠거든요.

굉장히 서열이 엄격했을 것 같은데, 그런 계급주의 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한국 사회에 남아있나요?

90년대에는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임과 동시에 계급주의적이며 문화적으로 투박했어요. 그러나 그런 부정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상황들이 오히려 저를 많이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만약 평범하게 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라면 그런 경험들은 못했을 거예요. 제가 겪었던 일들을 겪었기에 저는 늘 남들과 다름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님 안에 독일인의 정체성도 있나요?

네.  뉴욕에서 7년동안 살면서 제 안에 독일인의 정체성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받아온 교육이나 상식, 이성적이고 추론적인 생각 방식, 그리고 제가 하루의 루틴을 어떻게 계획하는지. 이 모든 것이 독일인의 삶의 방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두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 본인에게 강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이민 2세대들에겐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늘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정체성은 더이상 하나로 분류될 수 없고 유동적인 형태인 것 같아요.

그게 배우로서도 도움이 되었나요?

네. 제 정체성부터 제 직업, 교육, 그리고 독일, 뉴욕, 한국에서의 모든 시간 속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결국 제게 배우로서 값진 지양분이 되어 돌아왔고, 그로 인해 더욱 확실한 나만의 색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큰 자신감을 얻게 되었어요.

Yoo Teo wears a coat by Valentino

얼마전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 촬영을 무사히 마치셨다고 들었습니다. 2018년 칸 국제 영화제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독립영화 ‘레토’도 그렇고, 사실 배우님의 필모그래피에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흔치 않은데요.

네, ‘연애대전’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거기선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겉 보기엔 잘나가고 여배우들과 멜로도 많이 찍는데 알고보면 여자를 병적으로 의심하는 배우 역할을 맡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이 친구는 남자를 병적으로 의심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둘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로 알아가게 되는 내용이예요.

이런 역할을 좋아하시나요?

정말 좋아해요. 다만 역할 자체가 타이밍이 중요한 역할이라 소화하는게 제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굉장히 어려워요.

요즘은 너무 복잡하지 않은 주제의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각광받고 있는데, 그게 K드라마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유와도 연관 되어있나요?

음, 늘 성공 뒤엔 전략과 비법이 숨어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근 2년간 역할을 고를때 늘 그 철칙에 따라 신중히 골랐고, 2018년에는 운 좋게도 참여했던 외국 영화가 칸 국제 영화제에 진출해서 그 덕에 한국에서도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죠.

어떻게 러시아 독립 영화에 출연하게 되셨나요?

제 친구 중 우즈베키스탄 출신 한국 영화 감독이 있는데, 어느날 그 친구가 러시아의 한 감독님이 한국계 러시아인 록가수 ‘빅토르 최’의 전기 영화를 준비중이라고 귀띔해줬어요. 그렇게 제 오디션 테이프를 보내게 되었고 그쪽에서 굉장히 좋게 봐주셔서 바로 24시간동안 모스크바에 가서 오디션을 봤고요. 그리고 한달 뒤 다시 가서 영화를 찍게 되었죠.

그 뒤로는 일이 잘 풀리게 되셨나요?

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일종의 모델을 만들 수 있어요.

무슨 뜻인가요?

저는 배우로서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짐과 동시에 나라는 개인의 진실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며 스스로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서요.

그 기분이 어떠신가요?

부담을 느낄 때가 있지만 곧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죠.

 

Jacket, cardigan and shirt: Prada. Trousers by Y Project

아시아에서는 팬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팬문화 그 자체로도 이미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 되는데요. 팬을 위한 특별한 행사가 열리기도 하고, 팬분들께서 아티스트를 위해 화려하게 장식된 커피차도 보내주시기도 하고, 생일이면 선물도 보내주시고요. 배우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그걸 일의 한 부분이라고 봐요. 저는 한국 연예인분들 중 팬들을 잘 대해주고 그만큼 팬들도 서포트를 해주는 분들을 보고 제 롤모델로 삼았어요. 가장 큰 예로 BTS가 있는데요. BTS는 아이돌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팀이에요. 저도 BTS 멤버분들이 팬분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다짐했죠.

예를 들자면요?

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해요. 선물을 받으면 주기적으로 게시물과 스토리로 감사 인사를 보내요.

반짝 떠서 흥행을 거둔 스타들 중 대중들의 비난을 받아 하락하는 사람들도 많죠.

쉽사리 의견을 표출했다가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각심을 지녀야 하는 것 같아요.

배우님도 그런 안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저는 하고싶은 말은 하려고 하고 투명하게 지내려고 노력해요. 성공하기 위해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것도 좋지만, 그보다 좋은배우가 되는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어느덧 K-문화는 전세계적으로 크게 인정받고 또 넓게 사랑받고 있어요. 종종 ‘한류 열풍’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그 단어가 무례하다고 여겨지나요?

바다와 더 흡사해요. 우리는 언제나 좋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많이 배출해내었으나 지리적으로 서양권에서 만든 콘텐츠가 먼저 주목을 받게 된거죠.

지금은요?

제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뉴욕에 살고 있었을 당시에도 넷플릭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이미 15년, 20년 전부터 한국은 정말 좋은 콘텐츠를 많이 생산하고 있었지만 늘 국내에서만 소비되고 미국이나 유럽에선 아무도 보지 않아 안타까웠거든요. 그래서 이런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 활성화된다면 언젠가 판을 뒤엎을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들어 저도 서울에서 활동하기로 결심했어요. 험한 길을 택하는 한국의 고독한 한 마리의 늑대가 되기로요. 당시 제 친구들은 저를 보고 미쳤다고들 했어요. 한국에서 이쪽 업계로 일하는건, 15년 전은 특히 정말 상황이 여의치 않았거든요.

 

한국에서 고독한 한국 늑대가 되신건가요?

그 당시는 그랬어요. 특히 배우와 창작자로서 한국계 미국인인 것과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인인건 전혀 달라요. 제가 아는 한 제 또래 중 독일 출신 한국 배우는 저 밖에 모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저를 그들과 다른 배경을 가진 유럽사람으로 받아주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선 요즘 제가 꽤 ‘핫’한 사람이 되었어요. 저를 이루는 다른 문화적 요소들이 한가닥 한가닥씩 모여 이제는 하나가 된것 같아요. 전 운이 되게 좋은 편이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뒷받침해준 결과인거죠, 맞나요?

칸 영화제를 가기 몇년 전 제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었어요. 아무래도 나는 지금 하는 일로는 성공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먹고 살려면 거리에 나가서 길거리 공연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할 것 같다고. 그런 나라도 당신이 만족해준다면 우리 같이 살자고요.

결과적으로 프로포즈가 성공하셨군요.

네. 다행히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죠.

컨셉 아티스트이자 아내인 니키리 작가님과의 러브스토리는 말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같은 이야기예요. 전반적으로 드라마에는 늘 사회적인 메세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를 보며 한국의 발전, 관계의 마찰, 한국 사회의 구조,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이 지닌 힘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사회적 충돌도 많이 보이고요. 한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극단을 겪은 나라라, 근대사에서 한국보다 더 많은 극한의 어려움을 겪은 나라도 드물 겁니다.

역사속에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기도 했죠.

네, 한국은 경제적으로 90년대까지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그렇기 때문에 세대간의 차이도 엄청나요. 저희 가족안에서 제 아버지, 제 조부모님만 봐도 느낄 수 있어요. 저도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걸 겪었습니다. 그 극단의 상황들을 저희는 이미 맛보았어요. 제겐 단순한 일상인 것들이 누군가에겐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네요. 한국인들은 온갖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뒤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걸 정말 잘 하죠. 한국인은 진심으로 고통을 이해해서 그런거 같아요.

그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고요.

정확해요, 한국인은 고통과 불공평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때문에 그걸  희화화하는 민족인것 같아요.

부모님 두분 다 계속 독일에서 살고 계시나요?

네, 특히 저희 어머니는 독일이 더 편해지셨고, 두분이서 함께 행복하게 살고 계세요. 두분은 한국이 많이 변했다고 말씀하세요. 한국을 그리워 하시지만 독일이 더 편하다고 느끼세요.

배우님이 좋은 하루를 보낸다면 어떤 하루일 것 같나요?

저라면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유튜브로 독일 아침 뉴스를 볼 것 같네요. 네, 저는 매일 ‘Tagesschau’ 를 보거든요. (웃음) 가끔은 Ingo Zamperoni 의 ‘Tagesthemen’도 보고요. 그 다음 한국 뉴스를 보고 아내와 점심을 먹어요. 그리곤 좋은 촬영을 하며 오후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좋은 촬영을 하는 하루란 어떤 의미인가요?

촬영장에서 여러가지 일이 벌어지지만 저는 다 내려놓고 집에 가서 아내 품에서 잠드는 날이요.

촬영장에서 로맨스도 있나요? 드라마를 보면 키스씬이 무척 중요하잖아요.

제가 여태까지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라 흥미로운데, 현장 분위기는 작품마다, 현장마다 늘 다르기 때문에 단정짓기 어려워요. 작품에 따라 앵글을 교묘하게 조정해서 더 리얼하게 보일 수도, 배우들의 동의하게 그렇게 할 수도, 혹은 정말 케미가 잘 맞아 가능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하나의 공통분모로만 엮을 순 없는 것 같네요. 어쩌면 한국의 연극 문화와 역사가 서양에 비해 짧아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리얼해 보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여기서는 직감과 케미에 맡겨요.

배우 유태오는 넷플릭스의 새로운 시리즈 ‘연애대전’에서, Apple TV 의 ‘닥터 브레인’에서, 그리고 곧 방영 될 ZDF의 공동 제작 드라마 ‘더 윈도우’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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