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노상현은 오년 전 그의 첫 주연작을 따냈다. 그리고 그는 Apple TV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 커리어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우리는 어느 소탈한 스타를 만났다.
우리는 우연히 ‘파친코’의 애프터파티에서 만나 함께 바에 앉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노상현은 Apple TV에서 공개한 한 가족의 감동적인 대서사시에서 목사 백이삭 역을 맡았다. 백이삭은 병약하지만 깊은 속을 지닌 청년으로 다른 사내의 아이를 밴 여주인공 선자와의 결혼을 자처한다. 물론 이론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이 32세의 청년은 배우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짐과 동시에 인간적으로도 흥미롭고 소탈하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몇주 뒤 서울에 위치한 포토그래퍼 안성진의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나기에 충 분했다. 그는 배우이기 전에 모델로 활동을 한 이력이 있으나 배우로서 화보를 찍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파친코’ 이후 노상현은 쏟아지는 러브콜로 인해 무척 바빠질 예정이다.
노상현과의 단독 인터뷰 중 일부 발췌
백이삭 역할을 위한 오디션은 몇달에 걸쳐 굉장히 치열하게 진행되었는데, 배역을 따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파란만장 했어요. 마침 그 전날 친구의 생일 축하자리가 있어서 늦게까지 남아있었거든요. 다음날 열시 즈음 소속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소 리에 눈을 떠 받아보니, “너 역할 따냈어!” 하시는 거예요. 저는 어안이 벙벙해서 “네, 잠시만요, 무슨일이 일어난거죠?” 라는 말밖에 나오 지 않았고요. 십분동안 전혀 믿을 수가 없었어요.
파친코는 배우님의 첫 작품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작품일 것 같은데요. 벌써 변화를 느끼시나요?
네, 많은 분들로 부터 연락도 엄청 오고 있고, 전 세계 각지에서 친구들이 저를 응원해 주고 또 축하해 줘서 마음이 무척 벅차 올라요. 파친 코를 통해 저는 제 커리어적인 측면과 더불어 나라는 개인으로도 크게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었어요. 파친코 프로젝트와 이삭은 제게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이삭이라는 캐릭터가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
너무 이야기할 게 많아 시작을 못하겠네요. 그래도 정리를 해보자면, 이삭이 다른 캐릭터들과 다른 점은 이삭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능력 선에서 늘 다른 이들을 도우며 세상을 변화 시키려 노력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요.
이삭이 다른 사내의 아이를 가진 선자와 결혼을 한것 처럼 굉장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인것 같아요. 백년전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죠.
이삭은 본인의 두려움을 딛고 일어나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용기가 있는 사람임과 동시에 삶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죠. 이삭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 해요.
이삭을 통해 배우님께서 배우신 것도 있나요?
이삭이 중요시하는 것들이 제가 살아가며 느끼는 것과 무척 비슷해요. 그래서 이 캐릭터가 제게 와준 게 이상하면서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이삭이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는 모습도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파친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역경을 딛고 나아가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남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래서 더욱 감동이 큰 것 같아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은 한국인의 핏줄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때부터 한국에서 자라다 보면 인내는 당연한걸로 여겨져요. 어릴때부 터 인생이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거든요. 지금까지도요. 물론 점차 시간이 지나며 많은 것들이 좋아졌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고통을 견뎌야만 했어요. 그래서 한국은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의가 있어요. 예를 들자면 제가 육학년때 할아버지께서 캐나다에서 공부를 할 생각이 없는지 제안하셨어요. 당시 저는 캐나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일단 “네” 했죠. 그렇게 저희는 캐나다로 가게 되었어요.
할아버지와 두분이서요?
저희 어머니도 함께요. 아버지는 한국에서 일을 하셨고 어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일년 정도 머무르신 후 한국으로 돌아가셨어요. 저는 혼자 밴쿠버에 있었죠.
그 뒤 뉴욕에서 고등학교를 마치시고 보스턴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제 공부를 하셨고요.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변호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웃음).
진짜 직업을 가지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시죠.
네.
그런데 왜 전공을 살리지 않고 배우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부터 오스카 상을 따내리라는 거창한 꿈은 없었고요.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흥미가 직업이 되자 더 잘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유명세는 제가 꿈꾸는 성공의 일부 같아요.
환호하는 소녀팬들 말씀이신가요?
아뇨, 아뇨. 직업적인 기회를 열어주니까요. 더 많은 캐릭터를 소화해 볼 수 있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잖아요. 저는 유명세를 좇 으려고 하지 않아요.
할리우드에서 열린 시사회 자리에서 파친코의 각본가이시자 프로듀서이신 수휴는 “이땅의 있는 모든 선자들에게 바친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자는 지난 세기동안 한국 가정을 보필한 캐릭터죠. 배우님께서는 가족과 이런 이야기를 나눠보셨나요?
저희 어머니께서 좋아해주셨어요. 많이 우시기도 했어요. 제가 어렸을때 할머니 할아버지께 그 시절 이야기를 들었지만 자세히는 몰랐었어 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파친코가 여러 세대들이 대화를 나눌수 있는 창구가 되어준 것 같아요. 제 친척분들 중에도 이삭과 같은 자이니치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제 개인적으로도 더 특별하게 다가와요.
Noh Steve Sanghyun wears suit and sneakers by Louis Vuitton
솔로몬 역을 맡은 배우 진하는 한 세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다음 세대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1세대와 3세대의 소통을 권장했습니 다. 제 아버지는 굉장히 어린 나이에 군인으로 선발되어 러시아로 파병되었고 그곳에서 장시간 감금되어 1940년대 후반에서야 고국으로 돌아오실 수 있었어요. 그 당시에 대해 아버지께 여쭙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께서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속에서 독일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죄책감은 비단 저희 세대만 짊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반면에 한국인들은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탄압과 억압을 받아왔고 그것이 파친코의 배경이기도 한데요. 이 역사가 배우님 세대에도 영향을 끼치나요?
우리는 그 역사를 직접 겪어본 세대가 아니지만 파친코 같은 작품을 통해 역사를 마주하면 굉장히 이상하고 강렬한 감정을 느껴요. 단순히 슬프다고만은 할 수 없는 감정이죠. 영혼 깊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에요.
그걸 통해 한국의 질서를 이해할 수 있나요?
한국에서 모두가 부지런한 이유도 고통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우리는 우리나라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침략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요. 그 뼈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우선 힘을 길러야만 했고, 힘을 기르기 위해선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해야만 했어요.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군사력도 키워야 했고요.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죠.
극 중 양장점에서 목사 백이삭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수가 대치하는 강렬한 씬이 있는데요. 한수는 선자의 아이의 진짜 아버지임에도 불 구하고 이미 일본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선자와 결혼을 할 수 없었죠. 그래서 한수는 엄청난 힘을 가졌음에도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선자와 아들을, 그것도 본인보다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라이벌에게 잃어야만 했어요.
양장점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두 사람이 부딪히는 그 씬을 저도 무척 사랑해요. 둘은 우연히 만나 그 어떤 폭력 없이 언어로만 결투를 벌 이죠.
이삭은 선자와 오사카로 이주하며 더 나은 삶을 꿈꾸죠. 저는 여러 한국인들을 만날수록 무엇보다 음식 때문에 한국에 남아있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해외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어렸을때부터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다니며 유학 준비를 해왔어요. 비교적 새 언어에 적응을 빨리 했고 첫 해엔 가족과 함께 있어 큰 어려움 은 없었어요.
지금은 자리를 잡았나요?
네, 하지만 언제 또 돌아갈지 몰라요. 앞일은 모르니까요.
이삭이 극 중 이런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에 기도 드리면서 제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요. 여자와 아이에게 제 성을 물려주는 겁니다. 성이 뭐 대수인가요? 전 그냥 자손을 족보에 올릴 수 있는 남자로 태어나는 은총을 입은 사람일 뿐인걸요.”
그 대사를 통해 이삭의 넓은 마음과 깨어있는 사고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 당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몇 없었거든 요. 한국은 예전에 무척 보수적인 나라였어요.
성평등과 역할분담에 관하여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나요?
네,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예요. 최근들어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굉장히 현실적이고 평등한 쪽으로 가고 있어요.
이삭이 그의 아들 노아에게 했던 대사가 생각 납니다. “인내하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우리의 재능을 키워야 한단다. 네가 지금처럼만 한다면 아버지는 행복할거야. 어디를 가든 넌 우리 가족을 대표하는 훌륭한 사람이 분명해. 학교에서건, 동네에서건, 이 세상 어디에서건, 넌 그런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은 중요하지 않아.”
그런 것 같아요. 처음 대사를 읽었을때 마치 이삭이 제게 건네는 대사 같았어요. 제 아버지는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같은 분이 제게 인생 을 가르쳐주는 것 처럼 들렸어요. 굉장히 따뜻하면서도 엄한 대사 같아요. 제게도 많은 귀감이 되어 좋아하는 대사예요.
만약 요정이 배우님께 다가와 소원 세가지를 묻는다면, 어떤 소원을 빌건가요?
음, 아무거나요?
네. 그게 요정의 좋은 점 중 하나죠.
저는 우선 삶의 균형을 얻고 싶어요. 제게 균형이란 용기와 성실함이에요. 둘째로는 마음과 영혼의 평안을 얻고 싶어요.
마지막 소원은 조금 더 물질적인 걸로 어떨까요? 차나 큰 집같은?
햄버거요. 좀 배가 고프거든요.